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TechDays
- 홍대
- 코디
- qua
- 아망떼폴
- MSP
- 휴양지패션
- 홈쇼핑
- 연아 옷
- qua roports
- Microsoft Student Partner
- 연아 화보
- 아이오페
- 김연아
- 김연아 옷
- 쿠아로포츠
- 쿠아
- 스타일링
- 쿠아 로포츠
- 홍대맛집
- 10주년
- 김연아 원피스
- 프렌치 에피소드
- 손예진 옷
- 김연아 티셔츠
- 김연아 티
- 마이크로소프트
- 코디룩
- 프렌치에피소드
- 연아 자켓
- Today
- Total
danmicy
준비 되지 않은 엄마, 그래서 본문
내 나이 만 35살 엄마가 되었다. 평균보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남편과 많은 고민과 상의 끝에 아이를 임신했는데 막상 낳고 보니 나는 준비되지 않은 엄마였다. 지금은 아이 낳은 지 딱 보름. 몸도 마음도 회복되어 가며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이를 낳고 첫 일주일 동안은 정말 나도 내 마음과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가장 가까이서 날 봐준 남편은 오죽했을까. 이제야 좀 정신이 들어서 조리원에서 아이를 맡긴 틈을 타 이렇게 적어본다.
우리는 '진오비 산부인과'에서 출산했다. 주변 친구들 모두 택일을 잡고 선택제왕을 해서인지 나도 자연스럽게 그냥.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지라고 마음먹었는데, 한의사인 남편과 여러 대화 끝에 자연분만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한테 안 좋은 건 권하지 않겠지 뭐 이런 마음에... 그냥 무한 신뢰를 했...)
그러던 중 집 가까운 곳에 심상덕 원장님이 계시는 진오비 산부인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참 독특한 병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왕절개 비율이 전체 산모의 60%가 넘어가는 이 시점에 이 산부인과에서는 한 달에 열 건 좀 넘는 분만 중 한두건 만이 제왕절개 수술이고(의학적 소견으로 필요하다 생각되지 않으시면 수술해 주지 않으신다), 다른 병원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무통 주사도 (거의) 놓아주지 않으며, 아이를 낳자마자 두어 시간 뒤에 방으로 올려 보내서 그때부터 퇴원하는 날까지 24시간 모자동실을 하게 되는 병원.
직접 손수 만들어주시는 산모 수첩부터, 밤이고 낮이고 병원에서 주무시는 분. 집 앞 산부인과를 다니다 9주에 전원 했던지라 첫 진료 날의 까칠하심(?)을 잊을 순 없지만 그 무뚝뚝함이 단단함으로 커져서 40주 0일 만삭으로 출산하는 나에겐 정말 믿음! 그 자체였다. 아이를 낳은 지금 원장님에 대한 신뢰는 무한대로 커졌고, 남편은 심 원장님께 손편지도 써드릴 정도로 우리는 진오비 바라기가 됐다.
라고 써놓고, 벌써 아이가 80일이 됐다. 아마 100일 전에 이 글을 포스팅할 수 있을까 의문이긴 한데 이렇게 아들이 잘 자주는 지금의 패턴만 유지한다면 매일매일 차곡차곡 조금씩이라도 써서 올려봐야지. 벌써 갓 태어났을 때의 아이의 모습이 그립고 그 얼굴과 품 안에 쏙 들어오던 무게가 그립다.
걱정과 염려가 많은 나를 안다는 듯이 40주 0일이 되는 자정이 될 무렵, 아이가 나올 기미가 보였다. 이슬이 비춰서 이제 시작인 건가 싶었는데 생각보다 진통이 너무 심했다. 결국 슬리퍼에 잠옷 바람으로 병원에 가보니 이미 양수는 터진 상태. 산부인과 원장님은 초산인지라 집에서 시간을 더 보내다 와도 좋겠다 말씀하셨지만 남편이 미리 불수산 한약을 달여 놓았기에 부처님의 힘을 믿고(불수산은 부처님이 마치 밀어주는 것처럼 아이를 순산하게 도와준다는 한약이다) 무조건 입원한다고 남편만 짐을 챙기러 집에 보냈다.
몰래 한 포를 먹고 한두 시간이 지나자 3센티가 열렸고, 또 몰래 한 포를 먹으며 진통을 버티니 생각보다 진전이 빨랐다. 내가 출산한 병원은 무통주사를 잘 놔주지 않는 병원이라 엉덩이 주사로 진통제를 맞고 겨우 중간에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난다. 나 대신 진통 어플에 기록하던 남편은 그날부터 밤샘을 했... (게다가 그날이 일요일에서 월요일 넘어가는 자정이었기에 급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의원 휴가를 낸다며 미리 준비한 문자를 아침부터 보내며 꽤 바빴을 것 같다.)
아침 8시가 되기 전, 밤 새 진통을 해서인지 졸림을 참고, 아이는 골반에 머리가 끼어 있어서 한 시간 넘게 힘주기를 했지만 진이 빠져 지친 상태. 막 자려던 차에 아이가 나와 배고프기도 했고 졸리기도 했다. 제왕절개를 권유하신 원장님 앞에서 (내가 그렇게 힘들어 한 걸 보고도) 수술이요? 하며 울먹이는 남편을 보고 내 배 내가 째는 건데..? 의아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힘 내 보자 하고 노력한 게 열매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됐다. (흡입기를 사용하긴 했다)
아들은 생각보다 더 예뻤고, 생각보다 더 뽀얀 얼굴로 첫날부터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였다. (가족들 한정) 신생아가 이렇게 생길 수 있냐는 말을 여러 번 들을 정도로 까만 눈동자에 눈도 얼굴도 동글동글한 귀요미. 작명을 하려고 여러 곳 의뢰했을 때 다들 외모가 깔끔하고 신생아 같지 않은 채로 나왔을 거라고 하는데, 외모에 대해 말한 것들이 다 비슷해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이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암튼 우리는 세 곳의 작명소에 의뢰를 했고 아이의 이름을 정했다. 신생아 개명을 한동안 찾아봤다... 이름은 중요한 것이야.
아 ,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남편은 만 7년 넘게 운영해 온 업장을 정리하고 기존의 업장보다 2배 가까이 되는 큰 곳으로 확장이전을 준비 중이다. 세상에... 나는 자영업자가 이렇게 힘든 줄 처음 알았네. 용도변경부터 시작해서 인테리어까지 직원을 뽑는 일까지. 사실 아직 그 어느 하나 마무리된 일이 없다. 왜냐면 같은 장소 리모델링을 하려다, 같은 건물로 이전을 준비하다가, 아예 역세권 다른 건물로 이전을 하기로 결정했으니까. 참고로 이걸 모두 아이 낳은 지 30일경부터 해온 일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열흘 전 이사를 했다. 남편 업장 근처로. 아무래도 누구 한 명한테 몰아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내년 10월 나는 복직을 앞두고 있어 조급하기도 했다. 자리를 잡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을 하고 이런 모든 것들을 다 머릿속으로 계획했었다. 지금은 퇴사를 고민하는 게 함정... 그나저나 이사가 이렇게 비싸고 힘든 줄 몰랐네. 그리고 처음 집을 구할 땐 괜찮아 보였는데 막상 살려고 들어와 보니까 또 다르다는 걸 이번에 배웠다. 참 여러모로 배운 게 많다.
그러다 보니 나와 남편 둘 다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누가 더 힘든지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나는 나의 몫을 오빠는 오빠의 몫을 각자 묵묵히 해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산후 우울증이 잠깐 왔다가 정신 차려야지 싶어서 간신히 붙잡고 있다. 이런 나를 보는 남편도 마음이 힘들겠지만 아무리 쥐어짜 내도 그는 시간이 없는걸. (일 할 때는 아이가 잠을 자고서야 집에 들어왔기에 내가 보내주는 영상과 사진을 퇴근해서야 컴퓨터로 보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참 슬프다.)
처음엔 나도 너무 외롭고 슬프고 괴로웠는데, 업장을 정리하고 쉬고 있는(그렇지만 또 할 일이 쌓여있는) 남편을 곁에서 보니 참 많이 힘들겠구나 하는 마음에 뭐라 하지도 못한다. 둘 다 그렇게 우리는 이겨내고 있다. 아이를 재우고 다 늦은 밤에 부둥켜안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서 도면과 아이 육아용품을 같이 검색하며. 한두 시간이라도 짬이 나는 날에는 피곤에 절어도 아이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서 피곤함을 참고 어디든 나간다. 이게 부모가 되는 거구나. 힘들어도 해내야 하는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그럼에도 육아'라는 책에서 "나를 내어준 만큼의 행복"이라는 글귀가 와닿는 부모가 됐다.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준비되지 않았다. 육아용품 리스트만 적어두고 물건을 사두고 하는 게 부모가 되는 길이 아니라는 걸,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알았다. 이제야 알아버린 건지, 이제라도 알고 있는 건지. 그 두 사이에서 우리 둘은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다행히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 어쩜 이런 아이가 있나 싶을 정도로 우리의 부족함을 안다는 듯이 알아서 잘 커주고 있는 대견한 아들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더 믿는다. 그 믿음이 아이를 더 자라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것도 우리에게 배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부족한 엄마아빠에게 온 완벽한 아들, 그래서 우리가 만나게 된 건가 생각한다. 고맙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