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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미채미 2019. 9. 26. 23:33



반나절을 굶어서일까 뉴욕까지 먼먼 길을 힘들게 와서일까. 작고 좁은 방에서 잠깐 선잠을 자다가 밖으로 나왔는데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 엄청 넓고 넓은 뉴욕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길다가 눈에 띄인 호텔 안 카페에서 먹는 간단한 아침은 기분을 설레게 한다.




요즘 식사를 잘 안먹다 보니 커피도 우유 들어간 걸로 마시고 대충 때우게 되는데 최근 먹은 카푸치노 중에서 최고bbb. 카푸치노가 생각나는 걸 보면 가을이 왔나 싶다. 사실 초콜렛 크루아상은 그냥 그런데 여기 분위기가 다ㅏㅏㅏ 했다. 사진 찍고 싶은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눈에만 담아두기로. 원래는 가려는 한식당이 늦게 문을 열길래 커피 한 잔만 마시구 밥 먹으러 가려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 공기가 좋아서 여기 이렇게 눌러 앉았다. 어쩐지 책 한권을 가지고 오고 싶더라니. 다음에 뉴욕 여행을 오게되면 한번쯤은 꼭 묵고싶은 호텔이다. 내년 부터는 호텔 바뀐다는데 그 전에 또 뉴욕에 오게되면^_ㅠ 날 위한 선물로 여기에서 하룻밤을 자 볼까. 물론 뉴욕에 안 오는게 제ㅔㅔㅔ일이지만.





지난 번에 갔던 ace hotel 안에 있는 카페보다 자리도 많고 따뜻한 분위기가 너무 좋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도 혼자 카페 가서 책 보고 일기쓰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걸 좋아해서 종종 그러는데 (요즘은 잘 못했지만) 이렇게 해외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포스팅하거나 책 읽으면 되게 작고 소중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더 비행을 재밌게 느끼는 지도.






진짜 얼마 안 됐는데 그냥 언제부터인가 다시 일이 좋아졌다. 요즘 말로 하면 일태기 극복이랄까! 이 회사도 내 직업도 내 위치도. 많은 것들이 감사해졌고 앞으로 시간이 허락하는 동안 이 일을 즐기고 베풀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참 뉴욕 출발하는 날 작년의 나에 대한 평가 결과가 피드백 됐다. 팀 후반기로 가면서 힘듦이 줄어들었고 점점 더 대화가 잘 되고 마음을 알아주신다고 느끼긴 했는데... 전반기와 다른 평가가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 내가 노력한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 해 주신 것도. 그나저나 평가를 받고부터 항상 따라다니는 ‘책임감’ 이라는 말은 도대체 내 어떤 부분이 그런걸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남들에 비해 특출나게 책임감이 뛰어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떤 부분을 보고 그런 말씀을 다들 해주신걸까.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때 생활기록부에서도 이 단어를 본 것 같음!) 나도 그 자리에 가면 후배들의 좋은 모습을 알아봐주고 칭찬해 줄 수 있을까. 이건 생각만 해도 되게 어려운 것 같다. 뭐 아직 오지도 않은 먼 미래고 그런 상상을 해본 적도 없지만, 문득 그냥 내가 나이가 든 선배가 되었을 때 이제 막 커가는 후배들에게 상처 주지 않고 잘 커갈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는 큰 사람이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좋은 선배가 되어야하는데 과연 난 어떤지도 생각하게 된다. 지금 목표는 우선 내가 겪었던 선배 중에 안좋은 사람을 닮지 말고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을 쫓아가자 인데, 때로는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어렵기도 하다.






무튼 저어어엉말 고된 뉴욕 오는 길은 이 따뜻한 카푸치노로 토닥토닥 채워졌고 다시 집에 돌아갈 힘이 나는 것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따라가며 혼자 멍때리는 것도 너무 좋고. 커피 한 잔 딱 더 마시고 싶은데 잠 못자겠지. 아쉬워야 더 좋은 기억으로 남는 법이니까 아껴둬야겠다. 정 못참겠으면 내일 픽업 전에 와야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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